
감자칩은 세계에서 가장 흔한 과자다. 그러나 그 탄생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
1853년, 뉴욕 새러토가의 한 식당. 손님이 감자튀김이 너무 두껍다며 접시를 두 번, 세 번 돌려보냈다. 화가 난 요리사는 감자를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 튀겨 내놓았고, 뜻밖에도 손님은 흡족해했다. 감자칩은 그렇게 태어났다.
널리 알려진 ‘감자칩 탄생’ 이야기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 사실이 아니다. 게다가 이 이야기가 전국에 퍼진 건 1853년이 아니라 1973년, 그것도 감자칩 회사가 아니라 감자칩 ‘봉지’를 만드는 종이회사의 광고에서부터였다.
그렇다면 진짜 시작은 언제였을까. 그리고 광고는 왜 진짜 이야기 대신 다른 이야기가 필요했을까.
전설의 현장은 첫 줄부터 삐걱거린다
전설의 주인공은 조지 크럼(George Crum). 본명은 조지 스펙으로,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피가 섞인 요리사였다. 그는 새러토가 호숫가의 식당 ‘문스 레이크 하우스(Moon’s Lake House)’에서 일했다고 전해진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문(Moon) 가족이 이 식당을 산 것은 1854년이다. 전설이 말하는 1853년에는 ‘문스 레이크 하우스’라는 이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문 가족이 사기 전, 그 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1849년 8월 2일자 《뉴욕 헤럴드》에는 같은 호숫가의 그 식당(당시 운영자는 루미스 상회)에서 ‘일라이자(Eliza)’라는 요리사가 만든 감자 튀김이 새러토가의 화젯거리였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수십 명이 호수를 찾아와 그것을 기념품처럼 싸 갔다고 한다. 전설보다 4년 앞서, 같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이 이미 감자 튀김으로 유명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크럼이 지어낸 인물은 아니다. 그는 실제로 유명한 요리사였다. 자기 이름을 건 식당 ‘크럼스 플레이스’를 열었고, 1889년 《뉴욕 헤럴드》는 그의 얼굴을 판화로 실었으며, 1893년 지역 인명사전에는 그의 전기가 두 쪽에 걸쳐 실렸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심지어 1914년 부고에도, “감자칩을 발명했다”는 말은 한 줄도 없다. 살아 있는 동안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감자가 아니라 그가 사냥해 온 고기와 생선 요리였다.
진짜 첫 출생신고는 1817년, 영국 요리책에 있다
크럼보다, 일라이자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 권의 요리책이 나온다. 1817년 영국 의사 윌리엄 키치너(William Kitchiner)가 쓴 『요리사의 신탁(The Cook’s Oracle)』이다.

그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큰 감자를 깎아 동전 두께로 썰고, 마른 천으로 물기를 닦아 밀가루를 묻힌 뒤 라드에 튀긴다. 바삭해질 때까지 뒤적여 체에 밭치고, 소금을 아주 조금 뿌린다.
“Peel large potatoes, and slice them the thickness of a two-penny piece; dry them well in a clean cloth, flour them, and fry them in lard … keep moving them till they are crisp … send them up with a very little salt sprinkled over them.”
윌리엄 키치너, 『요리사의 신탁』(1817)
썰고, 바삭하게 튀기고, 소금을 뿌린다, 감자칩 조리법의 뼈대가 모두 들어 있다. 다만 두께가 달랐다. ‘동전 두께의 동그라미’였지 아직 종잇장은 아니었다. 5년 뒤 개정판에는 ‘사과 껍질 깎듯 돌려 깎는’ 리본 방식까지 추가된다.


이 책은 영국에만 머물지 않았다. 7년 뒤인 1824년, 미국 최초의 남부 요리책 『버지니아 주부(The Virginia House-Wife)』가 이 조리법을 그대로 옮겨 실었다. 새러토가의 일라이자가 감자를 튀기기 25년 전에, 미국 요리책에는 이미 감자칩이 인쇄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1853년에 감자칩을 ‘발명’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36년 전 영국 책에 이미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미국 과자’로 알고 있을까
출생 기록은 영국 요리책에 있는데, 우리는 이 과자를 미국 것으로 안다. 그 열쇠는 ‘이름’과 ‘봉지’에 있다.
‘칩(chip)’은 영어로 ‘깎아낸 조각’이라는 뜻이다. 나무를 깎을 때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칩이다. 그런데 1817년 키치너의 책에는 이 ‘칩’이라는 말이 없다. 그저 ‘얇게 썬 감자’였을 뿐, 이름 없는 상태였다. 그 이름을 처음 붙인 곳이 새러토가다. 이 과자는 이후 ‘새러토가 칩’이라 불렸고, 지명이 곧 상표가 됐다. 그리고 이때 지금 우리가 아는 그 모양, 종잇장처럼 얇은 동그라미, 이 완성됐다. 전설의 ‘더 얇게’는 지어낸 일화지만, 방향만큼은 진짜 역사였던 셈이다.

여기에 ‘봉지’가 더해진다. 1926년 캘리포니아의 라우라 스커더는 직원들에게 왁스지를 다리미로 눌러 붙이게 해 한 봉지씩 밀봉하는 봉투를 만들고, 처음으로 봉지에 신선도 날짜를 찍었다. 그때부터 감자칩은 통에서 덜어 사는 것이 아니라 ‘봉지째’ 사는 상품이 됐고, 봉지는 곧 이름과 그림이 찍히는 브랜드의 얼굴이 됐다. 1932년 허먼 레이가 트럭에 칩을 싣고 남부를 돌기 시작했고, 그 회사는 훗날 프리토-레이가 된다. 전국 어디서나 파는 과자가 되자 이름에서 한 동네 이름 ‘새러토가’가 떨어져 나가고, 그냥 ‘포테이토 칩’이 됐다.

정작 원산지 영국에서는 이 과자를 ‘칩’이라 부를 수 없었다. ‘칩’이 이미 다른 음식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1859년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 나오는 “감자 칩”은 두툼한 감자튀김, 즉 피시 앤 칩스의 그 칩이다.

그래서 1920년 런던의 프랭크 스미스는 얇은 감자 튀김에 ‘크리스프(crisp)’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결과가 지금의 이상한 지도다. 영국에서 칩은 감자튀김이고 감자칩은 크리스프인데, 미국에서 칩은 감자칩이고 감자튀김은 프렌치프라이다. 같은 단어가 대서양 양쪽에서 정반대 음식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출생신고: 1973년, 봉지 회사의 광고
이름도 모양도 봉지도 미국이 붙인 과자. 그러니 이 과자의 ‘이야기’까지 봉지 회사가 지었다는 건, 알고 보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1973년, 세인트 레지스 제지회사(St. Regis Paper Co.)가 《포춘》·《포브스》·《비즈니스 위크》 같은 경제지에 전면 광고를 냈다. 이 회사는 감자칩을 만들지 않는다. 감자칩 봉지를 만든다. 그런데 광고에 실린 것은 봉지가 아니라 ‘이야기’였다, 새러토가의 요리사 조지 크럼이 까다로운 손님에게 감자를 종잇장처럼 썰어 복수했다는, 바로 그 이야기.
물론 이 일화가 광고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그전에도 새러토가 일대에서 돌던 동네 전설이었다. 광고가 한 일은 그 동네 전설을 전국지에 실어 ‘감자칩의 발명 이야기’로 굳힌 것이었다. 경제지에 실렸다는 사실이 힌트가 된다. 이 광고의 진짜 독자는 감자칩을 먹는 소비자가 아니라 봉지를 사 줄 식품회사들이었을 것이다(이건 해석이다). 회사가 왜 이런 광고를 냈는지 밝힌 기록은 없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조는 분명하다. 요리사 한 명, 결정적 순간 하나, 통쾌한 복수, 그리고 ‘새러토가’라는 미국 지명, 1817년 영국 요리책에는 없던 극적인 요소가 이 이야기에는 전부 들어 있다. 이 드라마가 감자칩의 원조를 미국으로 둔갑시켰다.
감자칩의 비밀: 세 개의 날짜
돌아보면 감자칩에는 날짜가 세 개 있다.
- 1817년, 영국 요리책이 처음 조리법을 적었다.
- 1849년, 새러토가가 이 과자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 1973년, 봉지 회사가 ‘탄생 이야기’를 지어냈다.
음식이 먼저였고, 이름이 다음이었고, 이야기가 마지막이었다. 우리가 믿어온 ‘탄생 비화’는 감자칩의 역사가 아니라 광고의 역사였던 것이다. 이것이 감자칩의 비밀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 탄생 신화가, 정작 감자칩의 진짜 나이보다 한참 어리다는 것.
그러니까 칩은 처음부터 그냥 ‘깎아낸 조각’이었다. 화난 요리사의 복수가 아니라, 동전 두께로 썰어 라드에 튀긴 감자 한 조각. 그 이름은 그렇게 우리 입에 남았다.
참고 자료
- William Kitchiner, Apicius Redivivus; or, The Cook’s Oracle (1817·1822), 최초의 감자칩 조리법.
- Mary Randolph, The Virginia House-Wife (1824), 미국 요리책 최초 수록.
- New York Herald, 1849. 8. 2. (Library of Congress), 새러토가 ‘일라이자’ 기사.
- Charles Dickens, A Tale of Two Cities (1859), 영국식 ‘chips of potato’.
- Surprise Brand Potato-Chips 상표 등록 (1899, Library of Congress).
- St. Regis Paper Co. 광고, Fortune·Forbes·Business Week (1973), 크럼 전설의 전국 유포.
- 이미지: Wikimedia Commons·Library of Congress·archive.org (Public Domain), Wellcome Collection (CC BY 4.0). 각 사진 설명에 출처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