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도그의 비밀: 전쟁이 이름 짓고, 왕이 손에 든 음식

핫도그
세상에서 가장 흔한 길거리 음식, 핫도그. 그 이름 뒤에는 전쟁이, 그리고 한 번의 피크닉이 걸려 있다. (사진: Hekatlys / Wikimedia Commons, CC0)

1939년 6월 11일, 뉴욕주 하이드파크. 언덕 꼭대기 별장 잔디밭에 반짝이는 은쟁반 하나가 나왔다. 왕실 만찬에나 어울릴 법한 은쟁반. 그런데 그 위에 놓인 것은, 빵 사이에 소시지를 끼운, 하찮은 길거리 음식이었다. 받아 든 사람은 영국 국왕 조지 6세. 영국 군주로서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은 참이었다. 처음 보는 음식 앞에서, 왕비가 조용히 물었다.

이건… 어떻게 먹는 거죠?

“How do you eat this?” (통설로 전하는 표현)

왕비 엘리자베스, 1939년 하이드파크 피크닉에서 (전언)

그리고 석 달 뒤, 2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이 음식이 어떻게 그해 여름 가장 높은 식탁에 올랐을까. 그리고 왜 하필 이름이 ‘뜨거운 개(hot dog)’일까. 두 질문의 답에는 모두, 전쟁이 걸려 있다.

왜 하필 ‘개’일까

핫도그는 분명 소시지에 빵인데, 개는 대체 왜 나올까. 시작은 19세기 독일 이민자들이다. 그들이 미국에 가져온 길고 가는 소시지를 보고 사람들은 한 동물을 떠올렸다. 몸통이 길쭉한 독일 개, 닥스훈트다. 그래서 별명이 ‘닥스훈트 소시지’였다.

닥스훈트 석판화
‘오소리 사냥개’ 닥스훈트. 허리가 길고 다리가 짧아 오소리 굴로 파고든다. 길고 가는 독일 소시지는 이 개를 닮았다 하여 ‘닥스훈트 소시지’로 불렸다. (그림: C.F. Deiker, 『Jagdbare Tiere』, 19세기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닥스훈트라는 이름은 뜯어보면 더 재밌다. 독일어로 닥스(Dachs)는 오소리, 훈트(Hund)는 개. 합치면 ‘오소리 사냥개’다. 여기에 짓궂은 소문이 하나 얹힌다. 19세기 소시지 가게를 둘러싼 오래된 농담, “저 소시지 안에 진짜 개가 들어간 거 아니야?” 길거리 소시지 수레는 아예 ‘도그 왜건(dog wagon)’이라 불렸다. 그러니까 ‘핫도그’라는 이름은 닥스훈트를 닮은 생김새 절반, 개고기 소문이라는 블랙 유머 절반으로 만들어졌다. 이름 자체가 농담인 음식인 셈이다.

그런데 잘못 알려진 사실이 하나 있다. “1901년 뉴욕 야구장에서 만화가 태드 도건이 닥스훈트 철자를 몰라 ‘hot dog’라고 적었고, 그게 이름의 기원이 됐다”는 이야기. 지금도 책에 실릴 만큼 널리 퍼져 있지만, 문제가 있다. 그 만화는 지금까지 단 한 장도 발견된 적이 없다. 반면 예일대 학생 잡지에는 이미 1895년에 ‘핫도그’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심지어 학생들이 소시지 수레를 부르던 별명은 ‘케넬 클럽(kennel club)’, 즉 ‘개집 클럽’이었다.

이름을 지운 전쟁

사실 이 소시지의 원래 이름은 따로 있었다. ‘프랑크푸르터’,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소시지라는 뜻이다. 비엔나식은 ‘위너(wiener)’, 빈(Wien)에서 온 것이라 불렸다. 이름만 봐도 출신지가 보인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1917년 미군 모병 포스터
제임스 몽고메리 플래그의 1917년 미군 모병 포스터.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독일식 이름들이 지워졌고, 독일 도시 이름을 단 ‘프랑크푸르터’도 그 물결에 휩쓸렸다. (포스터: J. M. Flagg, 1917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그런데 1917년,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상대는 독일이었다. 그러자 미국 사회에서 독일식 이름들이 지워지기 시작한다. 사워크라우트는 ‘리버티 캐비지(자유 양배추)’로, 함부르크에서 온 햄버거는 ‘리버티 스테이크’로. 심지어 독일 개 닥스훈트를 ‘리버티 펍스(자유의 강아지)’로 바꾸자는 움직임까지 있었다(정착하진 못했다).

‘프랑크푸르터’도 무사하지 못했다. 적국 도시의 이름을 단 음식이었으니까. ‘리버티 소시지’라는 이름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대신 굳힌 것은, 학생들이 농담삼아 부르던 ‘핫도그’였다. 전쟁이 ‘핫도그’라는 말을 만든 것은 아니다. 이름은 이미 1890년대에 있었으니까. 다만 경쟁자의 이름이 적국의 이름이 된 그때, 농담 같던 이름이 공식 이름으로 굳어졌다. 전쟁이 끝난 뒤 ‘리버티 소시지’는 사라졌지만, ‘핫도그’는 남았다.

정리하면 이렇다. 이름은 개고기 농담이 만들었고, 그 이름이 자리 잡는 동안 경쟁자를 치운 것은 전쟁이었다.

전쟁을 이긴 피크닉

그리고 20여 년 뒤, 이 ‘국적 세탁된’ 소시지는 이번엔 반대로 전쟁의 한복판에서 외교관이 된다. 1939년 유럽, 히틀러가 체코를 삼키고 폴란드를 노려보던 시기, 영국은 절박했다. 미국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미국 여론은 싸늘했다. 1차대전에 끌려 들어갔다는 기억 때문에 “유럽 일은 유럽이 알아서 하라”는 고립주의가 대세였다. 그래서 그해 6월, 영국 국왕 조지 6세가 직접 미국으로 향한다. 영국 군주 역사상 최초의 미국 방문, 사실상 도와달라는 방문이었다.

조지 6세와 루스벨트
1939년 6월, 미국을 찾은 영국 국왕 조지 6세(왼쪽)와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 군주 역사상 최초의 미국 방문이자, 사실상 도움을 청하러 온 방문이었다. (사진: FDR Presidential Library & Museum / Flickr, CC BY 2.0)

루스벨트 대통령의 선택이 여기서 빛난다. 화려한 국빈 만찬으로 왕을 대접하면 미국인들 눈에는 “또 유럽 귀족들 잔치”로 보일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정반대로 갔다. 하이드파크 언덕 위 자신의 별장 ‘톱 코티지’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열어버린 것이다. 메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핫도그, 날씨가 허락하면(if weather permits).”

1939년 하이드파크 피크닉 메뉴
1939년 6월 11일 하이드파크 피크닉 메뉴 원본. ‘Hot dogs (if weather permits)’, ‘핫도그, 날씨가 허락하면’. 괄호에 그어진 취소선은, 날씨가 정말 허락했다는 흔적이다. (출처: FDR Presidential Library & Museum, 1939 / Public Domain)

이 피크닉은 열리기도 전에 난리가 났다. “왕족을 피크닉에, 그것도 핫도그 피크닉에 초대하다니. 나라의 품위가 위태로워진다!” 영부인 엘리너 앞으로 항의 편지가 쏟아졌다. 대통령의 어머니 사라는 자기가 받은 항의 편지 한 통을 며느리에게 그대로 보내기도 했다. 뒷면에 딱 한 줄 적어서. “이런 편지가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피크닉은 열렸다. 날씨가 허락했으니까. 그리고 국왕 부부 앞에 그 은쟁반이 나온다. 왕실의 격식 그대로, 은쟁반에 담긴 길거리 소시지 빵. 왕비 엘리자베스는 나이프와 포크로 우아하게 썰어 먹었다. 반면 조지 6세는 미국인들처럼 손에 들고 맥주와 함께 베어 물었다. 하나를 다 먹고, 하나를 더 청했다.

하이드파크 피크닉 현장
톱 코티지 잔디밭의 피크닉 현장(1939. 6. 11). 왕실 부부는 은쟁반에 담긴 길거리 소시지 빵을 대접받았다. (사진: FDR Presidential Library & Museum / Flickr, CC BY 2.0)

다음 날, 이 장면은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린다.

국왕, 핫도그를 먹고 더 달라고 하다, 맥주도 곁들여서.

“KING TRIES HOT DOG AND ASKS FOR MORE; And He Drinks Beer With Them.”

《뉴욕타임스》 1면, 1939. 6. 12.

제국의 왕이 길거리 음식을 손에 들고 베어 무는 모습. 그 순간 미국인들에게 영국 왕실은 거만한 옛 지배자가 아니라 “우리랑 같은 걸 먹는 사람들”이 됐다. 그리고 이 주말에는 국민이 못 본 장면이 하나 더 있었다. 피크닉 앞뒤로 두 사람은 서재에서 밤늦게까지 마주 앉았고, 왕은 그 대화를 직접 메모로 남겼다. 거기엔 루스벨트의 말이 이렇게 적혀 있다. “런던이 폭격당하면, 미국은 참전할 것이다.” 피크닉은 국민이 본 장면, 이 메모는 국민이 못 본 장면이었다.

무기대여법 서명
1941년 3월, 무기대여법에 서명하는 루스벨트. 피크닉으로 시작된 여론의 전환은 결국 영국을 돕는 법으로 이어졌다. (사진: FDR Presidential Library & Museum, 1941 / Public Domain)

석 달 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영국은 전쟁에 들어간다. 그리고 미국의 여론은 조금씩 영국 편으로 기운다. 2년 뒤에는 무기를 돈 받고 파는 대신 ‘빌려주는’ 법(무기대여법)까지 만들어 영국을 돕게 된다. 그 긴 여론 전환점 어딘가에 역사가들은 종종 이 피크닉을 놓는다. 그래서 이 날의 별명이 ‘전쟁을 이긴 피크닉’이다. 소시지 하나가 한 일 치고는 꽤 대단하다.

한국의 핫도그는 핫도그가 아니다?

이 피크닉으로 핫도그는 ‘미국 그 자체’가 됐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핫도그’라고 부르는 것은 이 음식이 아니다.

콘도그
우리가 ‘핫도그’라 부르는 그것, 막대에 꽂아 반죽을 입혀 튀긴 이 음식은, 미국에서는 ‘콘도그(corn dog)’라는 별개의 음식이다. (사진: Ocdp / Wikimedia Commons, CC0)

우리가 핫도그라 부르는 그것, 나무 막대에 꽂아 반죽을 입혀 통째로 튀긴 것. 미국에 가서 “핫도그 주세요” 하면 그건 절대 안 나온다. 미국에서 그건 ‘콘도그(corn dog)’라는 별개의 음식이다. 그리고 콘도그는 정확히 저 피크닉 메뉴판의 반대다. “날씨가 허락하면”이 핫도그였다면, 콘도그는 날씨가 허락하지 않아서 태어난 음식이다.

1939년 미국 오리건의 바닷가 마을, 핫도그 노점을 하던 보잉턴 부부가 비 오는 연휴에 날벼락을 맞는다. 빵이 죄다 눅눅해져 갈매기 밥이 된 것이다. 그래서 부부는 생각을 뒤집는다. “빵을 미리 만들어두지 말고, 소시지에 반죽을 입혀 주문 즉시 튀기면 되잖아?” 빵이 비에 젖는 문제를, 빵을 없애서 해결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텍사스에서는 플레처 형제가 옥수수 반죽을 입혀 튀긴 ‘콘도그’를 내놓는다. 막대에 꽂았으니 걸어 다니며 먹기 좋고, 튀기니 빨리 나왔다. 축제 음식으로는 완벽했다.

그렇게 미국 축제판을 평정한 콘도그가 바다를 건너 한국에 도착한다. 경로는 이번에도 전쟁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햄과 소시지 같은 가공육이 함께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 한국에서 소시지는 귀한 몸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노점들은 미국과 반대로 갔다. 미국 콘도그가 ‘빵 대신 반죽’이었다면, 한국 핫도그는 ‘고기 대신 반죽’. 얇은 어육 소시지에 밀가루 반죽을 두툼하게 입히고, 그 위에 설탕을 솔솔 뿌렸다. 배고픈 시절, 반죽이 고기의 빈자리를 채운 것이다.

그리고 이 ‘반죽 두꺼운 핫도그’는 세월이 지나 완전히 한국식으로 진화한다. 감자를 붙인 감자 핫도그, 모차렐라를 넣고 길게 늘여 먹는 치즈 핫도그까지. 이제는 이 한국식 핫도그가 ‘K-핫도그’라는 이름으로 거꾸로 미국과 세계에 수출되고 있다. 가난해서 두껍게 입혔던 그 반죽이, 지금은 치즈가 늘어나는 식감이 되어서. 이름이 한 바퀴 돌아 고향으로 돌아간 셈이다.

농담이 진담이 되기까지

돌아보면 핫도그의 역사는 이상하게 날씨와 얽혀 있다. 날씨가 허락해서 국왕의 은쟁반에 올랐고, 날씨가 허락하지 않아서 콘도그로 다시 태어났으니까.

핫도그는 처음부터 농담이었다. 닥스훈트를 닮은 생김새와 개고기 소문이 만든 이름. 그 농담을 진담으로 만든 것은 전쟁과 피크닉이었다. 적국의 이름을 지운 전쟁이 농담 같던 이름을 공식 이름으로 굳혔고, 한 번의 피크닉이 그 하찮은 음식을 ‘미국 그 자체’로 끌어올렸다. 그 이름은 그렇게 우리 입에 남았다.

다음에 어디선가 핫도그를 먹게 되면, 속으로 조금 아는 척해보자. ‘이 이름, 원래는 농담이었는데. 도그 안에는 오소리도 있고.’ 그리고 옆 사람이 막대 핫도그를 들고 있다면, 그건 사실 콘도그라는 것까지.

참고 자료

  • The Yale Record (1895) · Snopes, ‘핫도그’ 어원과 태드 도건 만화 기원설 검증.
  • 1차대전기 독일식 이름 개명(liberty cabbage 등), 미국 사회사 기록.
  • 하이드파크 피크닉 메뉴·회담 메모·사진 (1939), FDR Presidential Library & Museum 소장.
  • The New York Times, 1939. 6. 12. 1면, “KING TRIES HOT DOG AND ASKS FOR MORE.”
  • Pronto Pup(1939·오리건) / Fletcher’s Corny Dogs(1942·텍사스), 콘도그의 기원.
  • 이미지: Wikimedia Commons (CC0·Public Domain), FDR Presidential Library & Museum (Public Domain·CC BY 2.0). 각 사진 설명에 출처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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