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에서 진단명을 듣다 보면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글자가 있다. 바로 ‘~염’이다. 위염, 장염, 편도염, 관절염, 피부염, 간염.
이 병명들을 영어로 옮기면 하나같이 같은 꼬리를 달고 있다. gastritis, tonsillitis, arthritis, dermatitis, hepatitis. 전부 -itis로 끝난다. 이 짧은 접미어 하나가, 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많은 병의 이름을 만들까.
-itis, 사라진 단어 ‘병’의 흔적
-itis는 그리스어에서 왔다. 그런데 원래 이 말은 ‘염증’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냥 ‘~에 관한’이라는 뜻의 형용사 꼬리였다.
비밀은 생략된 한 단어에 있다. 그리스어에서 -itis는 늘 nosos, 곧 ‘병’이라는 단어와 짝을 이뤄 쓰였다. nosos가 여성명사였기 때문에, 그를 꾸미는 -itis도 여성형이 되었다. 예를 들어 arthritis nosos는 ‘관절에 관한 (병)’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다 뒤에 붙던 nosos(병)가 슬그머니 생략되고, 남은 -itis가 그 뜻을 통째로 떠안았다. ‘~에 관한’이 ‘~의 병’, 나아가 ‘~의 염증’이 된 것이다.
모든 것은 관절염에서 시작됐다
이 접미어가 영어에 처음 자리 잡은 단어가 바로 Arthritis 관절염이다. ‘관절’을 뜻하는 arthron에 -itis가 붙었고, 1540년대에 이미 쓰였다.
-itis라는 접미어는 바로 이 arthritis에서 뽑혀 나와, 다른 수많은 의학용어로 번져 갔다. 말하자면 관절염은 모든 ‘~염’의 맏이인 셈이다.
-itis 가족: 장기 이름 + 염증
원리를 알고 나면 -itis 계열 단어는 공식처럼 읽힌다. 어떤 장기의 이름 뒤에 -itis를 붙이면, 그 장기에 생긴 염증이 된다.
그래서 Appendicitis 충수염(막창자꼬리의 염증), Hepatitis 간염, Gastritis 위염, Tonsillitis 편도염, Dermatitis 피부염, Bronchitis 기관지염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앞의 장기 이름만 갈아 끼우면 되는 것이다.

짧은 꼬리에 담긴 오래된 문법
정리하면 -itis는 그저 ‘염증’을 뜻하는 도장 같은 말이 아니다. 그 안에는 생략된 단어 nosos(병)와, 관절염에서 시작된 2천 년의 내력이 접혀 있다.
다음에 ‘~염’이라는 진단을 듣거든, 그 영어 이름 끝의 -itis를 떠올려 봐도 좋겠다. 짧은 네 글자 안에, 사라진 단어 하나와 아주 오래된 그리스어 문법이 숨어 있다.
참고 자료
- Online Etymology Dictionary, ‘-itis’·‘arthritis’, etymonline.com/word/-itis (그리스어 여성형 어미, 생략된 nosos ‘병’, arthritis에서 접미어가 추상화됨, 1540년대).
- arthritis = 그리스어 arthron ‘관절’ + -itis. appendicitis·hepatitis·gastritis·tonsillitis·dermatitis·bronchitis 등은 모두 ‘장기 이름 + -itis’.
- 이미지: Gray’s Anatomy, Grant’s Atlas of Anatomy(Public Domain). 각 그림에 출처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