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놀리: 하렘에서 수녀원으로 간 바삭함

카놀리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디저트, 카놀리. 바삭한 껍질 ‘스코르자’ 안에 달콤한 리코타 크림을 채운다. (사진: Stefano Mortellaro / Wikimedia Commons, CC BY 2.0)

화려한 하렘, 그리고 얼굴조차 감춘 채 과자를 굽던 수녀원. 세상에서 가장 대조적인 이 두 장소가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한 디저트의 탄생지로 함께 꼽힌다. 향락의 공간과 금욕의 공간. 어떻게 한 과자의 고향이 두 곳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과자는 어쩌다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살인 현장에까지 남게 됐을까. 오늘의 주인공은 화려하고 은밀한 바삭함, 카놀리다.

갈대에서 온 이름, 나무껍질이라 불리는 껍질

카놀리는 갈대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칸나(canna)’에서 왔다. 옛 시칠리아 사람들은 반죽을 원통 모양으로 튀기기 위해 강가에서 잘라온 진짜 갈대를 틀로 썼다. 갈대에 반죽을 둘둘 감아 기름에 튀기고, 마지막에 갈대만 쏙 빼낸다. 그 모양 때문에 붙은 이름이 ‘작은 관’, 즉 카놀로(cannolo)다. 하나로 끝내지 못하는 과자라서, 영어권과 우리나라에서는 복수형 ‘카놀리(cannoli)’가 이름처럼 굳었다.

바삭한 껍질은 ‘스코르자(scorza)’라 부른다. 이탈리아어로 ‘나무껍질’이라는 뜻이다. 갈대에 감아 튀겼더니 이름은 나무껍질인 셈이다. 그 안에는 설탕을 섞은 리코타 크림을 채우고, 양쪽 끝을 체리나 설탕에 절인 오렌지 껍질, 피스타치오, 초콜릿으로 장식한다. 한입 깨물면 껍질은 와작 부서지고 그 틈을 차갑고 진한 리코타 크림이 메운다. 이 극단적인 식감 차이가 카놀리의 핵심이다.

아랍인이 남긴 달콤함, 그리고 ‘여성들의 성’

카놀리의 가장 유명한 발상지로 꼽히는 곳은 시칠리아섬 한가운데의 도시 칼타니세타다. 그런데 이 이름부터 아랍어에서 왔다. ‘칼아트 안니사’, 직역하면 ‘여성들의 성’이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여성들이 모여 살던 성이 있었다는 설도, 일하러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가 많았다는 설도 있다.

칼타니세타 파노라마
칼타니세타의 옛 파노라마(목판화). 도시 이름 ‘칼아트 안니사’는 아랍어로 ‘여성들의 성’이라는 뜻이다. (그림: Barberis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이탈리아 도시에 왜 아랍식 이름이 남았을까. 827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이 시칠리아 정복을 시작한다. 이들은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정제 기술, 관개 농업과 화려한 과자 문화를 섬에 퍼뜨렸다. 오늘날 시칠리아 전통 디저트라 부르는 카사타와 마지판에도 이 시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드리드 스킬리체스
12세기 비잔틴 연대기 「마드리드 스킬리체스」의 삽화. 붉은 글씨는 ‘사라센이 시라쿠사를 함락하다’로, 9세기 아랍 세력의 시칠리아 정복을 전한다. (그림: Madrid Skylitzes, 12세기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카사타
카사타. 카놀리와 함께, 아랍 지배기의 설탕과 과자 문화가 시칠리아에 남긴 대표적인 단맛이다. (사진: fugzu / Wikimedia Commons, CC BY 2.0)

사실 카놀리는 시칠리아의 역사 그 자체다. 껍질의 밀가루는 로마 시대부터 섬을 먹여 살린 밀이고, 크림의 리코타는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길러온 양의 젖이다. 그리고 그 둘을 달콤하게 이어붙인 설탕은 아랍 지배기에 이 섬에 본격적으로 퍼졌다. 과자 하나에 여러 시대의 시칠리아가 겹쳐 있는 것이다.

카펠라 팔라티나
아랍·노르만 시칠리아의 심장 팔레르모. 카펠라 팔라티나의 황금 모자이크에는 아랍, 비잔틴, 노르만 문화가 겹친 이 섬의 역사가 담겨 있다. (사진: Liilia Moroz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다시 ‘여성들의 성’으로 돌아가 보자. 칼타니세타에는 도시를 내려다보는 오래된 요새 피에트라로사 성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아랍 지배 시절 이 성에는 에미르의 후궁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정작 주인인 에미르는 북쪽 해안의 수도 팔레르모에 머물렀다. 당시 지중해에서 손꼽히게 번화했던, 아랍 시칠리아의 심장 같은 도시였다. 성에 남은 여성들은 가끔 찾아오는 그를 맞이하려 수많은 음식을 만들었고, 어느 날 바삭하게 튀긴 원통형 반죽 안에 달콤한 리코타 크림을 채워 넣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하렘 내부 회화
프란체스코 하예즈, 〈하렘 내부〉(1840). 아랍 지배 시절 성에 머물던 여성들이 카놀리를 처음 빚었다는 전설이 칼타니세타에 전한다. (그림: Francesco Hayez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이 전설을 꽤 진지하게 미는 사람들도 있다. 25년 넘게 카놀리를 연구해온 제과사 릴로 데프라이아는 2022년 칼타니세타에서 길이 21.43미터짜리 카놀로 제작을 주도해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랐다. 물론 세계기록이 원조의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사람들, 원조에 진심이다. 그런데 약 130킬로미터 떨어진 또 다른 도시가 전혀 다른 기원설을 들고나온다. 바로 팔레르모다.

얼굴 없는 제과사들, 팔레르모의 수녀원

팔레르모 한가운데에는 산타 카테리나 수녀원이 있다. 1300년대부터 2014년까지 봉쇄수녀들이 생활한 곳이다. 이곳의 수녀들은 수백 년 동안 과자를 만들어 귀족과 시민에게 팔았다. 그런데 판매 방식이 독특했다. 봉쇄수녀는 외부인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산타 카테리나 수녀원 과자
팔레르모 산타 카테리나 수녀원의 과자. 봉쇄수녀들은 수백 년 동안 담장 안에서 과자를 구워, ‘루오타’라 불린 회전문으로 얼굴을 보이지 않고 팔았다. (사진: Derbrauni / Wikimedia Commons, CC BY 4.0)

그래서 고안한 것이 ‘루오타(ruota)’, 벽에 설치된 작은 회전식 문이다. 손님이 한쪽에 돈을 올리고 돌리면 돈이 수녀원 안으로 들어가고, 잠시 뒤 다시 돌리면 돈은 사라지고 과자가 놓여 있었다. 손님도 수녀도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사람은 숨고, 과자만 나온다. 과자 판매는 수녀원의 생계와 직결돼 있었고, 그래서 비밀 레시피는 문서가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졌다.

그렇다면 카놀리를 처음 만든 사람은 칼타니세타 하렘의 여성들일까, 팔레르모 수녀원의 수녀들일까. 시칠리아 사람들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이 두 이야기는 경쟁하는 기원설이 아닐 수도 있다. 둘 사이에 하나의 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11세기 후반, 시칠리아의 주인이 아랍인에서 노르만으로 바뀐다. 노르만은 ‘북쪽 사람’이라는 뜻으로, 원래 바이킹이었다가 프랑스 북부에 정착한 기사 집단이다. 하지만 아랍계 주민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팔레르모 항복 조건에 원래의 종교와 재산을 유지한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렘에 있던 여성들 가운데 일부가 기독교로 개종해 수도원과 부엌으로 흘러들어갔고, 하렘의 조리법이 그들을 통해 시칠리아 부엌에 남아 수백 년 뒤 수녀원의 과자로 이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카놀리에 왜 두 개의 발상지가 전하는지를 가장 매혹적으로 설명해 주는 이야기다.

바이외 태피스트리
바이외 태피스트리(11세기)의 노르만 함대와 말. 노르만은 잉글랜드뿐 아니라 시칠리아까지 정복했다. (그림: Bayeux Tapestry, 11세기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바삭함이 대서양을 건널 때

수녀원 담장 안에 들어간 이 과자는 1년에 딱 한 철, 사순절을 앞둔 축제 카니발 때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 모양 때문인지 카니발 시기 남성이 여성에게 건네는 짓궂은 선물로도 등장했다. 처음에는 한 철에만 먹던 특별식이었지만, 카놀리는 점차 시칠리아 전역에서 사계절 내내 먹는 디저트가 됐다. 그리고 19세기 말, 이 과자는 시칠리아를 떠나 대서양을 건넌다.

리틀 이탈리아 멀버리가
1900년경 뉴욕 멀버리가의 리틀 이탈리아. 19세기 말, 시칠리아 이민자들은 카놀리를 대서양 건너로 실어 날랐다. (사진: Detroit Publishing Co.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뉴욕과 보스턴의 리틀 이탈리아. 낯선 도시에서 새 삶을 시작한 이민자들은 자신들이 먹던 음식도 함께 가져왔고, 카놀리도 그 배에 실려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놀리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을 상징하는 디저트가 된다. 그런데 국경을 건너면서 규칙도 조금씩 달라졌다. 시칠리아에서 좋은 카놀리의 기준으로 자주 꼽히는 것이 있다. 직접 튀긴 스코르자, 양젖으로 만든 신선한 리코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크림은 주문이 들어온 뒤에 채울 것.

촉촉한 리코타 크림을 미리 넣어두면 수분이 껍질로 스며든다. 바삭해야 할 카놀리가 눅눅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을 중시하는 가게는 완성된 카놀리를 미리 쌓아두지 않고, 주문을 받고 크림을 채워 바로 건넨다.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간 카놀리는 현지 사정에 맞춰 변한다. 구하기 어려운 양젖 리코타 대신 우유 리코타나 크림치즈를 섞기도 하고, 대량 판매를 위해 크림을 미리 채워두는 가게도 생겼다. 대신 바삭함은 조금 희생됐다.

“카놀리는 챙겨”: 살인 현장의 디저트

그렇게 미국화된 카놀리는 1972년, 전혀 예상 못 한 장소에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는다. 바로 영화 《대부》의 한 살인 현장에서다. 부하 클레멘자는 배신자를 처리하러 나가는 길이었다. 집을 나서기 직전, 아내가 그를 불러세워 “돌아올 때 카놀리 잊지 마”라고 말한다. 그리고 잠시 뒤 살인이 끝난다. 차 옆에 선 클레멘자가 부하에게 말한다.

총은 놔둬. 카놀리는 챙겨.

“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영화 《대부》(1972), 클레멘자 역 리처드 카스텔라노의 애드리브

마지막 “카놀리는 챙겨”는 대본에 없던 한 줄, 배우 리처드 카스텔라노의 애드리브였다. 이 한마디가 붙는 순간 앞 장면의 심부름이 살아난다. 아내의 부탁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하필 카놀리였을까. 감독 코폴라에게 그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퇴근길에 들고 오던 흰 상자 속 디저트였다. 시칠리아 이민자 가정의 평범한 심부름이, 살인 직후의 애드리브 한 줄로 바뀌어 영화사에 박제된 것이다. 이 장면을 통해 카놀리는 단순한 이탈리아 디저트를 넘어 이탈리아계 미국 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지금 미국에서는 매년 6월 16일을 ‘내셔널 카놀리 데이’로 기념할 정도다.

논쟁은 놔두고, 카놀리는 챙겨

돌아보면 카놀리 한 조각에는 시칠리아의 여러 시대가 겹쳐 있다. 로마의 밀, 양의 젖, 아랍의 설탕. 하렘의 전설과 수녀원의 비밀, 그리고 그 둘을 잇는 노르만이라는 다리. 바다를 건너 이민자의 위안이 됐고, 끝내 한 편의 영화로 박제됐다.

그래서 어디서 처음 태어났느냐고. 어쩌면 답은 이미 《대부》가 알려줬는지도 모른다. 논쟁은 놔두고, 카놀리는 챙기라고. 다음에 어디선가 이 원통형 과자를 만나거든, 크림을 그 자리에서 바로 채워 주는지 한번 확인해 보자. 속으로 조금 아는 척하면서.

참고 자료

  • ‘cannolo(작은 관)’·‘scorza(나무껍질)’ 어원, 이탈리아어.
  • 827년 아랍의 시칠리아 정복과 설탕·과자 문화, 시칠리아 음식사.
  • 세계 최장 카놀로 21.43m, 릴로 데프라이아 / 칼타니세타 (2022, 기네스 세계기록).
  • 팔레르모 산타 카테리나 수녀원과 ‘루오타’, 봉쇄수녀 제과 전통.
  • 영화 《대부》(1972) “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리처드 카스텔라노 애드리브.
  • 이미지: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CC BY·CC BY-SA). 각 사진 설명에 작가·라이선스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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